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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에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전통 장이 있는데요, 바로 배재희 씨가 빚어내는 어육간장입니다. 흔히 간장은 콩으로 담그지만, 배 씨의 어육간장은 생선과 닭, 각종 약재를 함께 발효시켜 만든 독특한 장입니다. 그 시작은 단순히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이 아니라, 손자를 살리겠다는 간절한 사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배재희 씨는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아이를 낳고 제대로 키울 수 없었던 아들을 대신해, 홀로 손자를 맡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손자는 육삭둥이로 태어나 몸이 약했고, 병원에서도 희망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손자를 살리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연고조차 없는 영암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집 앞마당 가득 장독을 놓고 손자만을 위한 어육간장을 담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어육간장은 단단한 육질을 가진 청계닭과 신선한 농어, 그리고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오랜 시간 발효시켜 만듭니다. 무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항아리 속에서 숙성된 간장은 깊은 맛과 영양을 품고 있었고, 그 귀한 간장으로 밥상을 차려 손자에게 먹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보양식처럼 먹이던 음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손자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아졌습니다. 그렇게 병원조차 고개를 저었던 아이가 어느덧 건강한 고등학생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배 씨는 손자를 키우며 음식 솜씨까지 더욱 다듬게 되었습니다. 어육간장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그녀의 삶과 정성을 담은 결정체였습니다. 생선과 닭의 감칠맛이 어우러진 이 간장은 일반 콩간장보다 풍미가 진하고 뒷맛이 깔끔해, 나물 무침이나 고기 요리, 생선 조림 등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렸습니다. 특히 염도가 낮아 건강에도 좋고, 오래 숙성된 덕분에 음식의 본래 맛을 살려 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하지만 배재희 씨에게 어육간장은 단순히 맛과 건강의 문제를 넘어, 삶의 버팀목이자 손자와 함께 걸어온 시간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녀는 손자가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매일 일기를 썼습니다. 힘든 날에는 눈물로 적기도 했고, 기쁜 순간에는 웃음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일기를 꺼내보며 손자의 성장 과정을 떠올릴 때면, 지난 세월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합니다.
손자에게는 할머니가 곧 엄마였고, 엄마가 곧 할머니였습니다. 그는 “할머니 없이는 못 산다”는 애정 어린 고백으로 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그런 손자의 말 한마디에 배 씨는 다시 힘을 얻었고, 앞으로도 손자가 잘 자라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배재희 씨의 어육간장은 영암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깊고 독특한 맛 덕분에 찾는 이들이 많아졌고, 전통 장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간장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장인의 손끝에서 나온 음식이 아니라 손자를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녀의 마당에는 여전히 장독대가 즐비합니다. 햇볕을 머금고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숙성되는 항아리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손자가 든든히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우리 전통 장맛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배재희 씨의 이야기는 결국 한 그릇의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랑과 희망, 그리고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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