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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 연산면은 계룡산, 대둔산, 천호산이 어우러진 지형 속에 자리한 고장으로, 이름 그대로 산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부터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장터 문화가 번성한 곳으로, 1911년 호남선 철도의 개통과 함께 연산장은 충청도의 대표 오일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은 물론 먼 고을의 상인과 손님들까지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고, 이 과정에서 연산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도 꽃피웠습니다. 그 중심에는 오늘날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연산 피순대가 있습니다.

연산의 피순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역의 명물로 자리해 왔습니다. 일반적인 순대가 돼지 피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연산 피순대는 피를 숙성시켜 잡내를 줄이고 맑은 피를 대창에 채워 넣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순대 특유의 텁텁함이 사라지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살아나, 순대를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성지’라 불릴 만큼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1919년 연산 오일장에 있었습니다. 당시 고(故) 김점순 여사가 행상으로 순대를 팔기 시작하면서 ‘연산 피순대’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장터에서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즐기던 순대는 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든든한 한 끼이자 소소한 행복이었고, 점차 연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김점순 여사의 뒤를 이어 딸 손복례 씨가 가업을 잇고, 다시 아들 강윤찬 씨로 이어지며 3대째 전통이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4대 강동현 씨가 그 명맥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특히 강동현 씨의 이야기는 연산 피순대가 단순한 전통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이자 세대 간 도전의 이야기임을 보여줍니다. 서울에서 음악 활동을 하던 그는 2014년, 할머니의 곁으로 돌아와 순대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할머니와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는 손자 사이에는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순대는 오래된 방식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딪힌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의 형성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전통의 뿌리를 지키되,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조금씩 변화하는 시도가 결국 100년의 역사를 오늘까지 이어오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연산 피순대의 가치는 단순한 맛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지역 장터의 역사, 가족의 삶, 그리고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오일장 풍경 속에서 삶의 애환을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 한 집안이 대를 이어가며 이어온 자부심,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지역민과 함께 호흡해 온 공동체적 의미가 순대 한 점마다 배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순대를 맛본 사람들은 흔히 “맛이 깊다”라고 표현합니다. 그 깊이는 단순히 조리법의 차이가 아니라, 세월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풍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연산 피순대는 논산을 대표하는 음식이자, 지역을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먹거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젊은 세대가 전통 음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는 지금, 4대째 이어지는 연산 피순대의 역사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변화와 도전 속에서도 뿌리를 지켜온 그 자부심은 단순한 ‘맛집’ 이상의 가치를 전하며, 지역의 문화유산으로서 소중히 남아 있습니다.

연산 피순대는 한 세기의 시간을 품은 음식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잇는 끈이며,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산줄기처럼 이어진 세월 속에서 오늘도 변함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이 순대 한 점은, 연산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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